"저기요가 뭐야, 저기요가." 주부 최용숙 씨(50.서울 관악구 신림동)는 지난달 초 사당동 친척집에서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일가친척이 모여 먹을 음식을 장만하던 5촌 조카며느리 정정아 씨(31)가 쭈뼛쭈뼛하더니 "저기요, 간장은 몇 술이나 넣어야 돼요?"하고 물어 온 것.
최씨가 "시집온 직 몇 년이나 됐는데 아직 '종숙모'란 호칭도 제대로 모르냐"며 화를 내면서 일순 새해를 맞으러 모인 친척들의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졸지에 비난의 표적이 된 정씨는 "결혼 전에는 주로 외가와 왕래가 많았고 친가쪽으로는 멀었다"며 "몇 년 가야 한두 번 보는 친척인데 편하게 서로 부르면 되지 복잡하게 '종질부'나 '당숙모' 따져 가며 호칭할 것 있느냐"고 항변했다. 정씨는 "조금 있으면 설날이어서 또 일가친척이 모일텐데 미리 공부 좀 해야 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핵가족이 보편화되고 친족간 왕래가 줄어들면서 친척간에 서로 얼굴도 모르는 것은 물론 촌수나 호칭조차 제대로 모르는 신세대가 급증하고 있다.친척 결혼식장이나 회갑연 같은 연례행사 자리에서 서먹한 친척끼리 어색한 미소나 모호한 호칭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금천구 가리봉동에 사는 오 모 씨(28)는 최근 어머니를 따라 결혼식장에 갔다가 생소한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오랜만에 뵈서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외가의 아저씨가 "내 이질인데 인사나 하게"라며 또래의 젊은이를 소개했는데 '이질'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 와서 열어본 컴퓨터 사전에 '아내의 자매의 아들딸'이라고 나타난 것을 본 오씨는 이렇게 가까운 인척을 나타내는 낱말인지조차 몰랐다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핵가족 시대가 된 데다 아이를 하나나 둘만 낳게 되면서 이런 사태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서울 관악구 봉천동 정 모씨 집에선 5촌간이건 3촌간이건 구별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5촌 아저씨나 아주머니는 '삼촌'이나 '고모'가 됐고 당질이건 친조카건 가릴 것 없이 '조카'로 부르고 있다.
아이들이 쓰는 호칭을 그냥 쓰는 문제도 심각하다.
가령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거나 남편 여동생인 시누이를 고모로 부르는 것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최근 들어선 남편을 '아빠'도 아닌 '오빠'로 부르는 신세대 주부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처지에선 '아빠'와 '오빠'의 구분조차 애매하게 됐다.
김남규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친척의 존함(이름)이나 호칭, 촌수를 아는 신세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서 "젊은 세대들은 작은아버지 또는 숙부 대신 삼촌이라고 부르거나 아이가 '아버지'를 '아버님'으로 부르는 등 기본적인 호칭도 제대로 모른다"고 지적했다.
손세호 기자
촌수 계산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부는 무촌, 부모와 자식이 1촌, 형제간은 2촌이다. 따라서 큰아버지의 아들과 '나'는 1(아버지와 나)+2(아버지와 큰아버지) +1(큰아버지와 아들)=4로 사촌간이다.
아버지의 미혼 형제는 삼촌, 기혼 형제는 큰아버지·작은아버지 라고 부르며, 백부(큰아버지)·중부(백부를 제외한 아버지의 형)·숙부(작은아버지)라고도 한다. 큰어머니는 백모, 둘째 큰어머니는 중모, 작은어머니는 숙모라고 부른다.
호칭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지칭하는 법을 꼭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
아들을 지칭할 때는 자식놈, 딸은 딸아이 등의 낮춤말을 쓴다. 사위는 '~서방' '~아비' 등으로, 부모 앞에서 남편이나 아내를 지칭할 때도 '~서방' '~에미' 등이라고 말한다. 말하는 이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지칭할 때도 말을 듣는 사람이 연장자라면 낮춤말을 쓰는 게 예의다.